<![CDATA[[김천대학교] 추천테마도서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sc.csp?sccode=recommend ko 2021-09-24T00:01:01+09:00 Copyright 김천대학교 All right reserved <![CDATA[치아 읽어주는 남자.2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5 백두빈 2021-08-12T10:15:43 <![CDATA[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1,그대의 그늘에 천년의 세월조차 쉬어가나니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4 백두빈 2021-08-12T10:15:33 <![CDATA[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한국 편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3 구술 증언과 사료를 통해 배우는 일본군‘위안부’의 진실!

지난 30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좋거나 궂거나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옛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일명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현재 수요시위는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2월 26일 1428차 집회부터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으며, 그동안 시간과 거리 문제로 참여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동참하고 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시위는 교복 입은 학생, 청년, 나이 지긋한 어른, 시민단체 운동가, 종교인, 외국인까지 모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전쟁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역사 교과서에 기록’ 등을 외치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일본군‘위안부’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전쟁 중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았고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진실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가르칠까?》(한국 편)은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료를 근거로 일본군‘위안부’의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낸 책이다. 저자는 일본이 과거 식민지를 지배하면서 벌인 야만적 인권유린의 끝판왕인 위안부 문제의 실체에 접근하고, 이 문제가 현재까지 왜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역사 부정을 넘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지우고 싶은 일본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처음으로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증언했다. 바로 김학순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고노 담화나 무로야마 담화 등 의미 있는 일본 정부의 발표도 있었다. 또한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 동안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위안부 제도를 국제사회에 알려 충격을 주었다. 이 보고서에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위안부’가 아니라 ‘전쟁 중 군대 성노예제’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군‘위안부’제도가 전쟁범죄임을 분명히 밝히고 국가로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우익들을 앞세워 자신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사건들을 부정하며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한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강제성을 부인하며 자기들의 주장을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 퍼뜨려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이런 활동을 ‘역사전(歷史戰)’이라고 부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2022년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하는 역사교과서 12종에서 단 한 종만 빼고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에 대한 서술을 지웠다. 이는 일본 정부가 강제 연행, 강제 동원 사실과 군의 직간접적인 관여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말한 1993년 고노 담화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준 사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한 1995년 무로야마 담화를 완전히 뒤엎는 행위이다.

전쟁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세상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대로다.”라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의 말처럼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그 어느 나라 정부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김학순의 증언 이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국경을 넘어선 연대활동도 꾸준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에서 꽃을 피웠다. 이 법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후 재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평화와 여성의 관점에서 21세기를 새롭게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시민법정이었지만 위안부 피해자 64명과 일본군 병사 출신 2명이 참석해 가해와 범죄행위를 증언했다. 이런 국제적 움직임이 크면 클수록 일본 정부와 일본 우파의 공격 또한 거세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하버드 램지어 교수를 이용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매춘부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국제사회에 퍼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시도와 달리,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반인종주의, 탈식민주의 관점의 교육이 보편적 규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각국 시민단체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연대를 통해 한층 굳건해지고 있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미래를 위하여

이제는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과거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자행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은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전쟁에서 저지른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전쟁 중에 일어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잊는 순간 같은 비극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1000번째 수요시위가 있던 날,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설치되었다. 소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정부와 군부가 운영한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희생된 여성들을 상징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 북한, 중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국적은 달라도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을 모두 함께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약속이자 다짐이다. 이러한 약속과 다짐은 세계 곳곳에 소녀상이 설치되면서 퍼져 나갔다. 그리고 2012년 12월 타이완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8월 14일(김학순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만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역사 수업의 중요한 점은 역사와 학생들의 삶이 만나는 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수업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전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가해와 피해가 있었는지 전쟁의 모든 면을 살펴야 비로소 진실이 보인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의 비극을 바로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과거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살펴야 한다. 적어도 20세기 가장 비참한 전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21세기에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한국 편)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가장 비참한 피해자였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각종 사료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맞닿아 있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려 준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 누가 방해하는지,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의 힘이 왜 중요한지, 평화를 지키는 노력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통해 전쟁의 본질을 생각하고 평화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
백두빈 2021-08-12T10:15:20
<![CDATA[K리그를 읽는 시간.2,우리 곁의 스타들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2 백두빈 2021-08-12T10:15:09 <![CDATA[강남에 봄은 지고 :거페이 장편소설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1 《강남에 봄은 지고》 : 20세기 말 중국인이 꿈꾸는 이상향, 강남!

《강남에 봄은 지고》는 ‘강남에 봄이 끝났다’는 제목에서부터 이상이거나 몽상의 시대, 즉 강남몽의 시대가 끝나고,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주인공 탄돤우와 팡자위는 시(詩)를 인연으로 만났지만, 현실은 더 이상 시의(詩意)가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아니 문학조차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황금에 자리를 양보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물신(物神)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이상은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전편에서 이상향으로 그려지던 화자서는 궈충녠의 예감대로 이상향과는 전혀 다른 세상, 환락의 도시로 바뀌었다. 누구는 화자서를 합법적이면서도 은밀한 매음굴로 만들어 ‘에덴동산’이란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주인공 탄돤우의 이부동모(異父同母) 형제인 왕위안칭은 화자서에 ‘공사(公社)’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지만 동업자에게 밀려나고, 허푸 남쪽 근교에 정신병치료센터를 세운다. 이상향과 정신병은 《복사꽃 그대 얼굴》에 나오는 루칸과 루슈미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왕위안칭 자신이 그 병원의 첫 번째 환자가 되고 만다. 이상향의 종말이다. 하지만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탄돤우의 부인인 팡자위가 시짱(西藏:티베트)을 그리워한 것은 또 하나의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 수 없다.

매번 보름달이 뜨는 밤,
나는 마음대로 전화를 걸어
초은사의 학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 거기에 있는가?
있는지 없는지
언제나 달빛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강남에 봄은 지고' 중에서/ p.526)

이처럼 1980년대 말, 탄궁다의 아들인 시인 탄돤우와 그의 아내 팡자위, 그리고 그들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20년에 걸친 삶의 여정, 정신적 변화를 둘러싸고 소설은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 직면한 현실문제와 정신적 곤경을 폭넓게 투사하고 있다. 작가는 놀라울 정도의 진지함과 용기로 시대의 문제에 바짝 다가가 거칠면서도 예리한 필치를 통해 현대 중국인들이 겪고 있는 시대정신의 고통스러운 콤플렉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국 백년의 정신적 변화, 급변하는 시대 속 개인의 꿈과 몸부림!

욕망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식색(食色)이다. 종족 번성과 생존의 욕구야말로 동물로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러한 욕망이 서로 부딪치는 곳이다. 아쉽게도 욕망은 무한히 확장되고, 자원은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욕망은 또 다른 면모를 지닌다. 끊임없는 이상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 추구의 욕망이 없었다면 인류는 야만에서 문명사회로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남삼부작》은 이러한 이상 추구와 현실 사이에서 일어난 한 집안 삼대의 연대기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이상향에 대한 욕망은 끝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화자서’에 대한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개인도 국가도 끝내 이루지 못한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공평하며, 공포와 탐욕이 사라지며, 심지어 강물조차 달콤해진 세상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강남에 봄은 지고》의 남자 주인공 탄돤우처럼 ‘무용(無用)’ 또는 ‘무위(無爲)’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강남삼부작》 전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성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산하는 잠들고》의 마지막 구절, 이미 죽어 환영으로 나타난 야오페이페이의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공산주의가 실현되었으니까요.”
페이페이가 그를 향해 웃었다.
“그런데 난 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 왜 사방이 어두컴컴하지?”
“볼 필요 없어요. 눈을 감아요. 내가 말해줄게요. 이 사회에는 사형이 없어요.”

사형이 사라지고,
감옥이 사라지고,
공포가 사라지고,
탐욕과 부패가 사라졌어요.
천지가 모두 자운영 꽃이에요. 영원히 시들지 않죠.
창장은 더 이상 범람하지 않고, 강물조차 달콤해졌어요.
일기와 개인의 편지도 더 이상 검열을 받지 않아요.
간경화도 없고, 복수도 차지 않아요.
타고 난 죄악도, 영원히 지속되는 치욕도 없어요.
난폭하고 우둔한 관리도 없고, 전전긍긍하는 백성도 없어요.
당신이 누구랑 결혼하고 싶으면 더 이상 나이의 제한을 받지 않아도 돼요.

“그럼, 그 어떤 번뇌도 있을 수 없겠네?”
“그래요. 어떤 번뇌도 있을 수 없어요.”
('산하입몽' 중에서/ p.543)

그녀는 탄궁다의 꿈에 나타나 공산주의가 실현되었음을 경축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낸 적이 없는 공산사회,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도 투쟁, 죄악, 부패, 심지어 탐욕조차 없는 사회가 마침내 실현되었다는 말이다.
비록 꿈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우리 역시 굳이 공산사회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이상향, 화자서로 달려가는 중이 아닐까? 설사 그것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강남몽이라고 할지라도. ]]>
백두빈 2021-08-12T10:14:57
<![CDATA[산하는 잠들고 :거페이 장편소설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70 《산하는 잠들고》 : 20세기 중반 중국인이 꿈꾼 이상향, 강남!

《산하는 잠들고(山河入夢)》는 1950~60년대의 중국 강남을 배경으로, 《복사꽃 그대 얼굴(人面桃花)》과 이어진다. 루슈미의 아들 탄궁다는 신 중국에서 메이청 현의 현장(縣長)이 되어 ‘사회주의 신농촌’에서 ‘도화원’의 이상을 꿈꾼다. 탄궁다의 웅대한 포부는 좌절을 겪고 탄궁다 의 어린 비서 야오페이페이는 강간을 피하다 살인자가 되어 도망가지만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듯 원을 그리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탄궁다는 ‘화자서(花家舍)’로 좌천당한 후 자신이 수년간 오매불망 꿈꿔 왔던 ‘무릉도원’이 이미 그곳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상향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도 없고 웃음도 없다.
《산하는 잠들고》는 루슈미가 감옥에서 낳은 아들 탄궁다의 개인사이다. 하지만 20세기 50~60년대 중국 대륙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특히 건국 후 사회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1958년부터 1960년 사이에 중국 공산당이 전개한 농공업 증산 정책인 대약진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과도기총노선’이라는 정책을 제시한 공산당은 1953년부터 1968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농업, 공업, 상업 등의 분야를 완전히 사회주의로 개조하고자 했다. 메이청의 현장으로 부임한 탄궁다는 이에 발맞춰 메이청에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인 푸지에 댐을 건설하고 메이청에는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에 들떴다.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도전이었다.

문득 그의 눈앞에 집집마다 수백, 수천의 꽃등을 환하게 밝힌 아름다운 전경이 떠올랐다.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펼쳐질 새로운 농촌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의 눈빛이 아득해지며 점차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산하는 잠들고' 중에서/ p.26)

그러나 그가 심혈을 기울여 축조한 댐이 홍수로 무너져 사람들이 죽자 그는 결국 부과풍(浮夸風)과 공산풍(共産風) 등 다섯 가지 큰 죄(五大罪)를 지은 까닭으로 현장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유는 이러했다. “5년 내에 공산주의를 실현하자는 제안은 우경모진주의의 심각한 착오를 범한 것이라 지적했다. 이렇게 큰 메이청 현을 개인적인 자산계급의 무릉도원으로 생각하여 12만 메이청 인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산계급적 허영심을 만족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자산계급의 허영심으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 경고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개인적 이상향의 국가적 실현이다. 그러나 국가는 필연적인 이상향의 실패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개인의 허영심으로 몰고갈 뿐이다. 이렇듯 개인은 집단, 국가, 사회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는 관직에서 쫓겨나고 화자서로 유배된다. 그곳은 어머니가 갇혀 있던 곳으로, 왕관청의 이상세계이자 도적의 소굴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향과 같은 곳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이상향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곳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와 같은 ‘101’에 의해 감시당하고 조종되는 곳이었다. 결국 그는 그곳의 감시망에 걸려 현상수배를 당한 연인 야오페이페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죄목은 은닉죄와 반혁명죄였다. 탄궁다는 메이청의 제2모범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76년(문화대혁명이 끝난 해) 간경화로 사망하고 만다.
역사는 이렇듯 반복되면서 또 하나의 비극을 잉태한다. 이는 이상향으로서의 화자서가 결국 머지않아 훼멸될 것이라는 화자서인민공사 서기이자 또 하나의 이상주의자인 궈충녠의 말에서 예감된다. “나는 화자서를 만들었지만 결국은 내 손으로 그것을 부숴버릴 수밖에 없어”라고 했던 그의 말은 왕관청의 말과 오버랩 된다. ]]>
백두빈 2021-08-12T10:14:50
<![CDATA[청구야담.하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69 백두빈 2021-08-12T10:14:43 <![CDATA[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2,남문의 완산 종소리 은은하게 우려 퍼지는 오늘이소서 내일이소서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68 백두빈 2021-08-12T10:14:32 <![CDATA[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치고지에 오비오마 장편소설.2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67 백두빈 2021-08-12T10:14:16 <![CDATA[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치고지에 오비오마 장편소설.1 ]]> http://lib.gimcheon.ac.kr/GCC/community/view.csp?sccode=recommend&scKey=466 백두빈 2021-08-12T10:13:56